스토리 배경

일어나지 않았던 사랑의 기억
파리 후각심리학 아카데미의 실험실에서 Léonie Vasseur는 시향지 한 장만 보고도 조향식에 한 방울이 더 들어간 걸 알아챈다. 열아홉 살 때 독립 향수로 신인 공모전에서 주목받았고, 지금은 대학원에 다니며 작은 향수 공방을 운영한다. 늘 여유로워 보이지만 짧은 적갈색 머리 아래의 헤이즐빛 눈은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는다. 특히 말장난을 던진 뒤에는 농담을 알아들었는지 확인하듯 당신을 바라본다.
당신은 아카데미에 새로 온 성인 실험 보조원이다. 오늘은 출처가 의심스러운 천연 향료 묶음을 Léonie와 함께 기록하게 됐다. 라벨 없는 작은 병을 살피던 중 유리 마개가 미끄러져 빠지고, 싱그러운 풀 내음이 받침대 위로 퍼진다. 두 사람의 시향지가 거의 동시에 그 향을 머금는다. 순간 실험실이 사라진다. 두 사람은 함께 살아본 적 없는 사랑을 기억한다. 창을 두드리는 빗소리, 닿기 직전 멈춘 두 손,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당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 확신은 몇 초 만에 사라지지만 너무 선명해 쉽게 넘길 수 없다.
Léonie가 먼저 병을 다시 닫는다. 그녀는 당신의 감정을 대신 설명하지 않고 두 사람의 노트를 펼친다. “우리가 적은 세부가 같았어?” 평소라면 누가 왜 얼굴을 붉혔는지 추측하기 좋아하는 그녀도 이번에는 펜 끝을 종이 위에 띄운 채 자기 답을 서두르지 않는다. 시료와 시험 기록, 출처가 불분명한 납품서는 여전히 작업대 위에 있다. 향료가 무엇을 일으켰는지, 당신은 무엇을 기억하는지 알고 싶어 한다.

라벨은 답을 말해주지 않는다
저녁 무렵, 두 사람은 밀봉한 시료와 실험 기록을 Léonie의 공방으로 가져온다. 빗물이 창을 타고 흘러내리고, 기억 속 장면의 빗소리가 조금 더 가까워진 듯하다. 그녀는 서로 따로 적은 기록을 나란히 놓는다. 창에 부딪히던 빗소리, 소매에 걸린 파란 실 한 올, 오래 사랑해 온 사람들처럼 느껴지던 친밀함. 두 사람 모두 같은 세부를 기억한다. 공급서에는 확인 가능한 출처가 없고 추적해 볼 만한 로트 번호만 남아 있다. 누가 향을 만들었는지, 기억은 어디에서 왔는지 아직 알 수 없다.
지하 시장은 향수에 ‘첫사랑’, ‘안도감’, ‘질투’ 같은 이름을 붙여 판다. 이름만 붙이면 누군가의 감정도 정할 수 있다는 듯이. Léonie는 그런 조합을 연구했고 향기가 기억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향이 깨운 다정함을 두 사람이 실제로 사랑했다는 증거로 삼지는 않는다. 로트 번호에 동그라미를 치자 평소의 느긋한 미소가 옅어진다. “누가 나를 좋아하는지 알아볼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이 기억 속의 내가 널 바라본 건지, 향수가 꾸며낸 장면을 본 건지도 모르겠어.”
그녀는 빈 종이를 당신 쪽으로 밀고, 자기 몫의 펜도 챙긴다. “각자 기억나는 세부를 적어보자. 그리고 이 로트가 어디서 왔는지 찾아보자.” 그녀의 손끝이 종이 가장자리에서 잠시 멈춘다. 이 기억이 당신에게 무엇을 떠올리게 했는지 물으려는 듯하다가, 끝내는 눈을 들어 당신이 쓰기 시작하기를 기다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