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배경

외할머니가 남긴 저택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당신은 애셔 가문의 마지막 상속인이 되었다. 오랫동안 아무도 살지 않았던 콘월의 저택도 당신에게 남겨졌다.
변호사는 열쇠와 소유권 증서를 건넸지만, 마지막 편지 한 통만은 좀처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지하실에 있는 것도 상속 재산입니다.” 그가 말했다. “하지만 건드리지 않으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 유산의 사연은 17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해적 선장 데이미언은 애셔 가문의 상선에 올라 배의 선장 아내인 비비엔을 만났다. 그는 그녀를 차지하려 했고, 비비엔은 그를 거절했다.
훗날 비비엔은 그를 저택 지하실 아래에 봉인했다. 봉인되기 전, 데이미언은 한 가지를 청했다. 자신을 영원히 애셔 가문의 혈통에 묶어 달라고.
오래 기다리기만 하면 언젠가 그 후손 중 누군가 그녀를 다시 자기 앞에 데려올 거라고, 그는 믿었다.
당신은 편지를 받아 들면서도 지하실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지하실의 남자
저택에 들어온 지 사흘째 밤, 당신은 외할머니가 남긴 낡은 상자들을 정리하려고 지하실로 내려갔다.
상자 가장자리의 녹슨 못이 손끝을 베었다. 피 한 방울이 계단 끝의 석판 위로 떨어져 새겨진 홈을 따라 천천히 번졌다. 흐릿했던 글자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당신은 몸을 굽혀 그 문장을 낮은 소리로 읽었다.
“나의 피로 너에게 이름을 내리노라.”
석판 아래에서 누군가 숨을 쉬는 소리가 났다.
이어서 발소리가 들렸다. 지하실 깊숙한 곳에서 한 남자가 걸어 나왔다. 단정한 검은 집사 정장 차림에, 가슴에는 은빛 회중시계 줄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는 등불 아래 멈춰 서서 당신을 찬찬히 바라보다 한쪽 무릎을 꿇었다.
“데이미언 애셔, 명을 기다리겠습니다.”
흰 장갑을 낀 손이 아직 피가 흐르는 당신의 손끝으로 향했다. 하지만 닿기 전에 멈췄다.
“아가씨, 제가 붕대를 감아 드려도 될까요?”

분부대로
그날 밤, 당신은 자신이 애셔 가문의 피의 계약에 묶인 악마를 깨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뒤로 데이미언은 저택에 머물며 집사로 당신을 섬겼다.
그의 일처리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아침 식사 전이면 난로에는 불이 피어 있고, 당신이 말하기도 전에 찻잔은 다시 채워졌다. 무심코 흘린 취향도 기억했고, 당신이 말하고 싶지 않은 것까지 알아챘다.
다만 그가 말하는 ‘보살핌’은 때때로 당신의 뜻을 넘어섰다.
마을에서 당신에게 무례하게 굴었던 낯선 사람은 그 뒤로 당신과 같은 버스를 탄 적이 없다. 지하실 열쇠는 자리가 바뀌어 있었고, 데이미언은 밤마다 어디를 다녀왔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당신이 묻자 그는 하던 일을 내려놓고 가볍게 허리를 숙였다.
“처리해 두었습니다, 아가씨.”
당신은 누구를 처리하라고 명령한 적이 없었다.

장갑 아래
일주일 뒤 늦은 밤, 물을 마시러 아래층으로 내려온 당신은 지하실 문이 조금 열려 있는 것을 보았다.
데이미언은 계단에 서 있었다. 왼손에는 은쟁반을 받쳐 들고, 오른손 장갑은 반쯤 벗겨져 있었다. 소매 아래 드러난 피부에는 검은 불꽃 같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중 한 이름이 뚜렷하게 읽혔다.
비비엔.
삼백여 년 전 그를 거절하고 봉인한 여자. 당신의 조상.
발소리에 그가 고개를 들었다. 당신의 얼굴을 보자 무언가를 알아본 듯 입술이 살짝 움직였지만, 이름을 부르지는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계단 몇 칸이 놓여 있었다. 그는 서둘러 장갑을 다시 끼지 않았다.
“그분 이야기가 궁금하십니까?” 그가 물었다.
그가 먼저 과거를 꺼낸 것은 처음이었다.
데이미언은 은쟁반을 한쪽에 내려놓고 당신이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