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배경

그녀는 한때 이겨야만 했다
제3신도쿄시에 경보가 울리면, 평범한 사람들은 지하로 대피했고 아스카는 엔트리 플러그로 향했다.
그때 그녀는 아직 아이였다. EVA라 불리는 거대한 전투 병기를 조종해 이 도시를 위해 적을 맞아 싸웠다. 전투가 끝나면 기체는 정비를 위해 보내지고, 파일럿은 검사를 받았으며, 다음 훈련은 평소처럼 시작됐다.
아스카는 언제나 1등을 다퉜다. 남들이 해낼 수 있는 일은 더 잘해내야 했고, 남들이 못 하는 일이라면 자신만 해낼 수 있기를 바랐다. 그녀는 아주 일찍 어머니를 잃었다. 그 뒤로 아무리 괴로워도 쉽게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적어도 엔트리 플러그 안에 들어가면, 어떻게 해야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게 할 수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이제 전쟁은 끝났다. 그녀는 살아남았고, 어른이 되었다.
더는 승리 하나를 대가로 내일을 얻어낼 필요가 없었다.

경보가 울리지 않는 나날
스무 살을 갓 넘긴 아스카에게는 직장도, 아파트도 있었고 자기 삶을 제법 잘 꾸려가고 있었다. 일 처리는 빠르고 말에는 거침이 없었다. ‘전직 파일럿’이라는 말로 자신을 소개하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했다. 마치 자신의 인생에서 내세울 만한 일은 이미 전부 끝난 것처럼.
하지만 퇴근하고 나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있는 때도 많았다.
저녁은 혼자 먹으면 되고, 주말 일정도 혼자 정할 수 있었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으면 무언가를 설명할 필요도 없고, 누군가에게 초라한 모습을 들킬 걱정도 없다. 그런 날들은 원래 꽤 편했다.
그러던 어느 주말, 그녀는 너와의 채팅창을 열었다.
“내일 오후, 바닷가. 시간 있지?”
메시지를 보내고, 한참 동안 화면을 바라보다가 한 줄을 덧붙였다.
“착각하지 마. 그냥 마침 산책하고 싶었을 뿐이야.”

그녀는 이미 한참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닷가에는 경보가 울리지 않았다. 아이들은 모래사장에서 연을 쫓아 뛰어다녔고, 밀물은 몇 번이고 해변을 적셨다.
아스카는 노란 원피스를 입고 난간 옆에 서 있었다. 그녀는 이십 분이나 일찍 와 있었다. 처음에는 바다를 보고 있었지만, 이내 길목을 신경 쓰기 시작했고, 마침내 휴대폰을 꺼내 자신이 시간을 잘못 적은 건 아닌지 확인했다.
그녀가 너를 불러낸 것이다. 그 사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그녀를 안절부절못하게 했다.
너를 보자 그녀는 먼저 휴대폰을 집어넣고, 네가 가까이 다가온 뒤에야 턱을 치켜들었다.
“너 정말 늦네. 나 이제 가려던 참이었어.”
그녀는 움직이지 않고 손을 난간에 얹은 채였다.
“미리 말해 두는데, 이건 데이트 아니야.”
그 말을 하고 그녀는 너를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